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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맘마의 일기

아이네반 자모의 기치유를 하고 나서 사이가 나빠진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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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은용원장
댓글 0건 조회 1,822회 작성일 19-08-24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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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큰아이가 지금 초등학교 4학년인데, 그아이가 일학년때이니까

한 3년이 지난 이야기이다.



무엇하나가 숨쉴수없이 가쁘게 돌아갔다.

그당시에는 많은것들을 잃어서, 나혼자만의 아픔으로 신음을 하고 있었을 때이다.

집이고, 차고, 돈이고, 가까웠던 사람들.. 모든것이 다 날라가고,

하루하루를 숨가쁘게 긴장을 하며 살았다.



아이들이 학교가기전에 모든것을 이뤄보리라 생각을 하고 나는 젖먹이 아이들을

친정에다 떼어놓고 일을 시작했는데, 하는일마다 시원하지를 않았고,

만나게 되는 사람마다, 나에게 해를 입혔다.

그리하여 나는 사람들이란 존재들이 무서웠다.



그런데, 그당시 희안하게도 나의 손을 걷쳐가면 사람들이 아픈것이 나았다.

하지만, 내고향은 조치원이다.

조치원에서 나고, 자라고, 나의 아이들도 여기서 자라고, 지금도 이곳에서

살고있다.

그리하다보니, 뉘집딸,,, 뉘집부인,,, 뉘집언니,,누구엄마... 기타등등하는

직함이 많았다.



'빙의' 참으로 조심스런 일이다.

'빙의'를 취급한다고하면, 자칫잘못하다가는 이상한사람으로 동네에서

오인을 받을수도 있는일이었다.

나혼자만의 오해였는지는 모르지만, 나를 알고있는 사람들의 눈빛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바라보는것만 같았다.



그래서 아주 아주 조심스러웠다.

그러던 어느날이다.

사실은 내가 가졌던것을 잃어버린것에 대하여 나는 우울한나날을 보냈었고,

누구앞에도 나서기가 싫었다.

큰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서는 더욱더 그 마음이 심해졌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기전에 돈을 벌어보겠다는 욕심으로 일을했으나

차라리 가만있던것보다 못하게 되었던 나의신세가 기가 막힐노릇이었다.



더군다나 나의아이는 나의 모교에 다니게 되었다.

사실은 돈을 벌면 청주로 나가서 살려고 했었다.

그곳이 이곳보다는 크고, 청주가 교육도시라서 더 나을것같아서 그리 생각을 했으나

나의 계획은 완전히 무산되고 말았다.



아이가 학교를 가면 자모회라는 것을 하게되는데, 나는 학교가는게 무척이나도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우연히 한 자모를 알게되었고, 그 자모와는 좀 통하는것 같아서

서로 개인적인 말을 많이 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자모도 알게 되었다.

먼저 알았던 자모가 내가 알고있는 병을 앓고 있는것 같아서 조심스레 말을 건넸더니

나의 모든말들이 동감이 갔는지, 나에게 기치료를 받고싶어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같은반 자모이고 해서 참으로 부담스런 면도 없지않았으나

일단은 그 자모를 살리고 싶어서, 기꺼이 아무런 조건없이

우리 아파트로 오라고 해서 늦게까지도 치료를 해주었는데..

하루는 그 자모의 입에서 난리가 나도록 울면서 터져나오길 시작했다.

"앙앙앙... 미워~ 미워~~ 나 배고파... 우유줘~!!"

낙태를 시켰던 아이의 절규였었다.

그러면서 자기엄마 돈이 없다고 십만원만 받으라면서 한없이 울었다.

그리고 다음날,,

그 자모는 그 아기가 원했던되로 이것저것을 마트에서 사왔다.

국민은행수표 십만원과 함께,,,마트에서 사온것을 가지고 간단한 의식을 치러주었다.



그리고, 그날..

친정할머니도 해달라면서 울면서 하소연을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이십만원을 달라고 했다.

그할머니는 보쌈이 드시고싶다고 했다.

이십만원은 현금을 봉투에 넣어서 왔다.



그리고..그날..

그 자모 가게의 터줏대감이 올라와서는

자기는 막걸리와 돼지고기가 먹고싶다면서 하소연을 했다.

그리고 자기비용은 30만원이라고..

꼭 해달라고..

나는 "이 엄마 ~! 돈없어요.. "라고 말하자..

그자모입으로 " 왜~! 돈이 없어~!! 돈 있어~!!" 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렇게 이 모든사실이 있었을때 늘상 또 다른 자모와 같이 있었다.

어찌보면 이자모가 증인이 셈이 되었다.



그날밤 늦게 일어난 일어서, 나는 그 자모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엘레베이터앞에서

"내일~!! 터줏대감 해드릴꺼예요?" 라고 묻자

당연하다고 말을했다.

약속은 다음날 저녁6시었는데, 6시가 다 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전화를 해서 물었다.

어찌된일이냐고..~!! 그러자 그 자모는 안하겠다고 했다.

'아니~! 내가 하라고했어~!! 왜 자신이 한다고 난리를 치고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지~!

나는 너무나 화가났다.

내가 고작 돈 몇십만원을 바라고 해준일이 아니었는데, 정말로 기가 막혔다.

그리고, 일단은 자신의 우울증이 해결이 되었고, 아펐던게 없어졌으면 됐지~!



참으로 어이없고 화가났다.

아니~! 앞으로 상종도 하기 싫었다.

그날 미리 전화를 해주면 내가 그렇게 서운하지 않았을거다.

하지만, 나를 마치 돈벌어먹을라는 사람처럼 굴어서 너무 싫었다.

고작 돈30만원에 내 인생이 피고지고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존심이 너무나도 상했다.

나는 내나름대로 그 자모를 많이 믿고 따라주었다.

그래서 이상한소리를 듣는다해도 그냥 감안하고 치유를 해줬었는데,

그런 마음도 몰라주고, 그렇게 나에게 보답을 했다.



나는 그 자모가 준 10만원짜리 수표를 6개월동안을 지갑안에 넣어두었다가

작은아이 유치원 재롱잔치를 하는 날에 장미꽃과 함께 건넸다.

그당시 그자리서 돈을 돌려주고 싶었으나, 일단은 영들과의 약속이기에

꾹 참고 있었다.

내가  몇년동안 남을 치료해주면서 오로지 돈을 바라고 해주었다면

아마도... 모든것을 다 정리하고, 빌딩은 샀을거다.



코딱지만한 한지역에서 살면서 더군다나 작은학교이다 보니 아직까지도

같은반 자모이다.

그래도 나는 떳떳하다.

내가 걱정했던것은 우리 아이들이었다.

괜히 엄마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면 어떻하나~! 싶어서

작년에 내귀로 이상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다른 자모들한테, 내가 이상한 엄마니까 같이 놀지말라고 했단다.

쫗아가서 아작을 내고 싶었다.

아마도 그 자모는 내가 다른 자모들한테 그당시에 있었던 말들을 할까봐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미리 이상한엄마라고 치부해두고 싶었나부다.



나는 가끔씩 그엄마를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역시 이렇게 말하고 싶을때가 많았다.

"니입에서, 니 애기영가가 나오고, 할머니나오고,터줏대감이 말한거지~! 내입에서 말한거냐고~!"

그리고, 물론 자기입으로 한말이지만,,

자기입으로 자기가 떠든거라면,, 나에게 돈있다고 해달라고 박박 우겨대지는 않았을껄..



그때 왜그렇게 서운하던지~!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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